일상2011. 9. 25. 12:02
지난 목요일 저녁에 '오르세미술관전(展) 고흐의 별밤과 화가들의 꿈'을 다녀왔다. 관람하는 동안 흥분이 되어서, 걸어다니면서 나도 모르게 혼잣말을 자주 중얼거렸다.

미술 관람을 직접하는 느낌은 책이나 인터넷으로 봤을 때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붓터치는 직접 보지 않으면 절대 모른다. 책으로 보면 2D인데, 직접가면 미술작품이 3D로 보인다. 몇몇 작품은 그림속의 빛의 느낌이 마치 그림 밖에서 실제 빛이 그림속으로 비추는 느낌을 받았다. 정말 좋아하는 락밴드를 공연장에서 함께 뛸 때의 그 기분과 같고, 코리안시리즈 마지막 경기를 TV중계가 아닌 직접 야구장을 찾아가서 볼 때의 기분과 같다.

미술관을 나올 때 상당히 흥분이 되었다. 나를 흥분하게 만든 작품 몇개를 소개한다. (초짜 관람가의 개인적인 느낌을 적은 것이다.)


마리 프랑수아 피르맹 지라르, 회복기의 환자들

마리 프랑수아 피르맹 지라르, 회복기의 환자들, 캔버스에 유채, 100.3 x 188cm, 1861

세세한 표현에 깜작 놀랐다. 나무가지의 세세함, 그림자의 표현들.
특히 놀랐던 것은 그림 오른쪽 아래에 4명이 카드놀이하는 장면이다. 카드 모양이 정교하게 그려져 있다. 그 자리에서 맨 오른쪽에 앉아 있는 사람의 안경을 살짝 들어올려 이마에 걸쳐놓았는데, 실제 안경을 그림속에 붙여놨나라는 느낌을 받았다.
그림속에 환자가 아닌 사람이 한명 있다. 그림 오른쪽 나무 근처에 걷고 있는 수녀가 있다.
한가지 어색한 부분은 그림 왼쪽편에 환자가 나무를 기대고 서 있다. 너~ 포즈를 너무 의식했어.


앙리 팡탱-라투르, 뒤부르 가족

앙리 팡탱-라투르, 뒤부르 가족, 캔버스에 유채, 146.5 x 170.5cm, 1878

각각의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는 4명의 가족. 상당히 무게감이 느껴졌던 그림이다.
왼쪽에 서있는 사람은 화가의 처제다. 그녀의 외출복은 뽀송뽀송한 털로 되어 있는데, 마치 솜털로 살짝 살짝 찍어낸 듯한 느낌이었다. 앉아있는 장모의 소매부분도 마찬가지다.


폴 기구, 빨래하는 여인

폴 기구, 빨래하는 여인, 캔버스에 유채, 81 x 59cm, 1860

그림 왼쪽 앞에서 비춰지는 햇빛이 등 뒤를 넘어가는 것을 잘 표현했다. 그림 왼쪽 상단에는 빨래 너는 모습이 보인다. 초등학교 다닐 때, 종이죽으로 탈을 만든적이 있다. 이 그림은 소재가 물감이 아니라, 그 종이죽으로 붙여놓은 것 같았다. 실제로 그건 아니지만. ^^


카미유 피사로, 서리가 내린 들판에서 불을 지피는 소녀

카미유 피사로, 서리가 내린 들판에서 불을 지피는 소녀, 캔버스에 유채, 92.8 x 92.5cm, 1887~1888

점을 찍듯이 그리는 '점묘화법'으로 표현한 그림이다. 특히 모닥불의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을 잘 표현했다. 그림은 평온하게 느껴지지만, 여인이 나뭇가지를 부러트리기 위해 힘주는 모습에서는 역동적인 느낌도 든다.

이 그림을 볼 때는 반드시 가까이에서 '어떤 색의 점들로' 찍었는지 봐야 한다. (분리)
그리고, 뒤로 몇 발자국 물러서서 어떻게 '하나로 조합'되어 보이는지 봐야 한다. (통합)

가까이 그리고 멀리, 이렇게 두 곳에서 보지 않으면 반쪽자리 감상만 한 것이다. 도시의 밤과 낮은 상당히 다르다. 오직 낮만 보고 그 도시를 안다고 말한다면 우스울 것이다.


에바 곤잘레스, 극장 <이탈리안>의 특석

에바 곤잘레스, 극장 <이탈리안>의 특석, 캔버스에 유채, 98 x 130cm, 1875~1878

검은색과 흰색의 조합과 여자의 자세가 에두아르 마네의 '발코니'가 떠올랐다. 에바 곤잘레스의 스승이 바로 에두아르 마네였다고 한다. 여인네의 진주(?) 목걸이에 자꾸 시선이 갔다.

에두아르 마네, 발코니

에두아르 마네, 발코니


에드가 드가, 계단을 오르는 발레리나들
에드가 드가, 계단을 오르는 발레리나들, 캔버스에 유채, 39 x 98.5cm, 1886~1890

역시 '에드가 드가'다. 그의 작품을 보면 각도의 예술, 시선의 예술이라고 느껴진다. 사진작가를 해도 이름을 날렸을 것 같다. 생각보다 그림은 작았다. 하지만, 가로로 훨씬 긴 이 그림을 보니, 에드가 드가라면 사진 파노라마처럼 파노라마 형태의 그림을 그렸어도 좋겠구나 싶다.

그림 왼쪽 아래의 발레리나는 과감히 잘라버렸다. 드가의 전형적인 방식이다.
'동양'에서는 여백의 미를 즐겼다면,
'에드가 드가'는 중심적 요소가 아니라면 과감히 잘라버러는 '절삭의 미'를 즐기지 않았을까.



클로드 모네, '보트들, 아르장퇴유의 보트 경기'

클로드 모네, '보트들, 아르장퇴유의 보트 경기', 캔버스에 유채, 60 x 100cm, 1874

이 그림은 강위에서 그렸다. 어떻게? 배 한척에 선상 아틀리에를 마련하고 그렸다고 한다.
보트, 강의 물결, 그리고 그림 왼쪽 중앙에 작은 배를 잘 살펴 보시길.


필립 윌슨 스티어, 해변의 젊은 여인, 캔버스에 유채, 125.5 x 91.5cm, 1888~1889년경

여인의 옷자락이 상당히 부드럽게 느껴진다. 바람에 날리는 듯하다. 여인의 자세는 클로드 모네의 '산책'에서 그의 아내 '카미유'가 우산을 들고 있는 모습과 비슷하다.
전시된 위치가 묘해서 20~30cm 앞에서도 그림을 볼 수 있었는데, 그림이 갈라진 것 까지 잘 확인할 수 있다.

클로드 모네, 산책

클로드 모네, 산책



펠릭스 발로통, 공

펠릭스 발로통, 공, 마분지에 향유와 과슈, 48 x 61cm, 1899

아이가 공을 잡기위해 뛰어가는 모습을 그렸다. 재료는 서양적인데, 시선은 공중에서 바라보는 동양적이다.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소년과 고양이, 캔버스에 유채, 124 x 67cm, 1868~1869년경

책에서 봤을 때는 소년인지 소녀인지 헷갈렸다. 직접보니 명확했다. 소년이구나.
광대뼈, 무릎과 그 주변, 등뒤의 모습 등이 리얼했다. 고양이의 눈에서 포근함이 느껴지지 않은가?
르누아르 그림답게 전체적으로 부드럽게 느껴졌다.


클로드 모네, 고디베르 부인의 초상

클로드 모네, 고디베르 부인의 초상, 캔버스에 유채, 217 x 138cm, 1868

그림이 실제 인물만큼 엄청 컸다. 모네의 초대형 작품으로는 마지막 작품이었다고 한다(기억이 가물가물). 두번째 놀란 것은 드레스였다.
실제 옷감을 그림에 붙여놓은 것으로 착각할 정도였다. 과장된 표현이 아니다. 진짜 그렇게 느꼈다.
그림을 감상하는 위치는 정면보다 조금 왼쪽에서, 가까이 보다는 몇 발자국 뒤에서 봤을 때 제맛이다.


카롤루스 뒤랑, 장갑을 낀 여인

카롤루스 뒤랑, 장갑을 낀 여인, 캔버스에 유채, 228 x 164cm, 1869

전체적으로 검정색 위주로 어둡게 표현되어 있어서, 하얀 장갑과 얼굴이 눈에 띈다. 팔찌, 장갑 등 전체적으로 섬세하게 그려졌다. 하지만, 정면을 바라보는 모습과 손의 인위적인 포즈에서 약간의 불편함을 느꼈다. 모네의 '고디베르 부인의 초상'의 자연스러운 자세에 점수를 더 주고 싶다.


폴 세잔, 카드놀이하는 사람들, 캔버스에 유채, 47.5 x 57cm, 1890~1895년경

폴 세잔의 '카드놀이' 작품 중에 하나. 줌으로 당겨서 두 남자의 카드하는 모습이 강조되어 있다.
탁자, 그위에 탁자보, 파이프, 술병, 카드외에는 소품이 보이지 않는다. 왼쪽 남자가 앉아있는 의자도 1자로만 쫘악 그여져 있다시피 한다.

한가지 재밌게 본 것은 왼쪽 남자의 상의와 오른쪽 남자의 바지 색깔이 비슷하고, 그 반대로도 비슷하다.
양복 2개를 사서, 상하의를 나눠 입은 듯 했다. ^^


장 프랑수아 밀레, 봄, 캔버스에 유채, 86 x 111cm, 1868~1873

장 프랑수아 밀레, 봄, 캔버스에 유채, 86 x 111cm, 1868~1873

'사계'연작 중에 '봄'에 해당한다. 겨울 작품은 완성되지 못하고 죽었다고 한다.
눈에 띄는 것은 왼쪽 상단에 쌍 무지개. 중앙의 나무 아래에는 비를 피한 사람이 보인다. 길을 따라 앞 옆에 꽃이 피어있고, 과수원과 밭이 보인다. 그리고, 하늘에는 흰새가 날고 있다. 새는 책으로 봤을 때는 전혀 보지 못했다.

책에서 못 느꼈던 것이 빛의 느낌였다. 실제로 보니 그림의 중앙 부분이 비교적 밝게 빛나고, 테두리 부분은 어둡다. 중앙 부분을 빛이 묘하게 비추고 있는 것 같았는데, 비온 뒤에 밝아지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느낌을 표현하기 애매하고, 그림을 직접 봐야만 한다.


카미유 피사로, '루앙 항구, 생 세베'

카미유 피사로, '루앙 항구, 생 세베', 캔버스에 유채, 65.5 x 92cm, 1896

저 위에 점묘화법으로 그림을 그렸던 그 '피사로'의 작품이다.
이 그림을 글로 표현하려니 뭐라고 써여할지 모르겠다. 아~ 나의 표현력의 부족. ^^
맘에 들어서, 전시회를 나오기 전에 다시 한번 본 작품 중 하나다.


폴 시냐크, 아르장퇴유의 보트 경기

폴 시냐크, 아르장퇴유의 보트 경기, 콩테, 21.7 x 31.2cm, 1885~1890년경

파리에서 가까운 곳에 '아르장퇴유'가 있다. 철도가 연결된 이후, 아르장퇴유의 풍경에 매력을 느껴 파리 사람들이 자주 찾았다고 한다. 보트는 밝게 표현하고, 사람은 어둡게 표현했다. 강 건너편에서 해가 지고 있어서 역광을 받은 느낌이다.


폴 고갱, '소가 있는 해변, 일명 절벽에서'

폴 고갱, '소가 있는 해변, 일명 절벽에서', 캔버스에 유채, 72.5 x 61cm, 1888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작품이다. 그런데, 오디오에서 흘러나온 소리를 듣고 다시 보게 되었다.
그림 중앙의 파도 부분을 잘 보라. 오른쪽을 바라보는 '사람의 옆얼굴'이 보인다. 이마, 지그시 감은 눈, 하얀색의 매부리코, 입, 턱까지. 폴 고갱의 자신의 모습을 그림에 넣었다고 한다.


빈센트 반 고흐,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 캔버스에 유채, 72.5 x 92cm, 1888~1889

이 한 작품을 봤다는 것만으로 전시회에 온 보람을 절실하게 느꼈다. 책으로 봤을 때의 느낌을 훨씬 뛰어넘었다.
밤하늘을 별은 그냥 별이 아니다. 북두칠성이다. 그 별의 가운데를 점으로 찍었는데, 붓으로 그린 것이 아니다. 물감 튜브를 직접 짜내서 바른 것이다. 물에 비친 빛도 물감을 투텁게 그려졌다. 물감이 흘러 내린 흔적도 보인다. 이 그림은 분명 평면이 아니라, 입체화다.

붓터치를 특히 자세히 봐야 한다. 하늘은 넢고 짧게 가로로, 건물은 건물 모양에 따라, 강물은 가늘고 길게 가로로, 그리고 아래쪽은 가늘고 길게 그렸으나 오른쪽이 낮은 사선형태로 그려졌다.

이 작품은 3번을 봤다. 처음에 모든 작품 하나씩 볼 때, 사람이 많은 가운데, 한발짝 한발짝씩 왼쪽으로 가면서 5분정도 봤다. 그리고 전시종료 30분 전에 사람이 널널한 가운데 다시 한번 가서 보고, 나오기 전에 한번 더 봤다.

윈슬러 호머, 여름밤

윈슬러 호머, 여름밤, 캔버스에 유채, 76.7 x 102cm, 1890

그림속의 빛은, 그림 밖에서 실제 빛이 그림 속을 쏘고 있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놀라웠던 작품이다.
책으로는 절대 느낄 수 없다. ^^ 이 그림에서 빛의 비중은 절반을 넘을 것 같다.

하얗게 빛나는 파도, 그리고 어둡게 표현된 바다를 바라보는 사람들.
중앙에는 달빛 아래에서 남녀가 아닌 두 여인이 춤을 추고 있다. 여인의 표정이 밝다.
그림을 자세히 보다보니깐, 뒷모습을 한 여인의 엉덩이는 옷을 입고 있지만 곡선이 느껴진다.

말장난 하나만 하자. 화가의 이름은 'Winslow HOMER'다. Win+slow, 그리게 보는게 이기는 거다. 그림 볼 때는 그렇다.


프레드릭 바지유, 응급처치, 캔버스에 유채, 47 x 62cm, 1865

누워있는 사람은 친구인 '클로드 모네'이다. 모네가 그림에 도움을 청하려 바지유를 불렀다. 그리고, 모네의 작품에 모델까지 했다. 그러나 며칠 뒤 집에 가려고 했으나 모네가 다리를 다쳐서 며칠 더 머무를 수 밖에 없었다.그기간에 '응급처리'라는 그림을 그리게 된 것이다.
침대 위에 매달려 있는 항아리가 재밌다. 상처 입은 다리 위로 물방울이 하나씩 떨어지게 해서, 다리를 시원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바지유의 정성이 돋보인다.


클로드 모네, '명상, 일명 휴식'

클로드 모네, '명상, 일명 휴식', 캔버스에 유채, 48 x 75cm, 1870 또는 1871

작품 속 모델은 모네의 아내 '카미유'다. 시선을 어디에 두는지는 정확히 알 수는 없다. 책을 들고 있는 왼손은 왠지 어색하다. 책을 쥐는 듯 마는 듯 하다.

쇼파의 꽃그림(?), 카미유 오른편의 쇼파 주름, 벽난로 위에는 일본 부채와 도자기.
하지만 내 시선을 오랫동안 머물게 한 것은 빛의 방향이었다. 오른쪽 창문(?)에 검은색 커튼이 적당히 열려 있다. 그 열린 커텐 사이로 빛이 들어오고 있다. 그 빛은 쇼파를 비추고, 그리고 카미유의 얼굴에 까지 비춰진다. 그림을 직접보면 확실하게 느껴진다.


클로드 모네, 임종을 맞은 카미유, 캔버스에 유채, 90 x 68cm, 1879

자궁암에 걸려 32살의 나이에 카미유는 생을 마감했다. 카미유는 고요하게 누워있다. 그림 전체의 붓터치를 잘 살펴봐야 한다.


마지막으로 초보 관람객인 저의 개인적인 감상방법은 이렇다.

  • 최소 2시간은 생각하고 가자. 1시간 반은 전체 작품을 살펴보고, 나머지 30분 정도는 점 찍어놨던 작품들을 다시 살펴본다.
  • 오디오가이드는 대여한다. 3,000원. 2명이 가면 한쪽 귀로 나눠 들으면 요금 절약.
  • 도록이나 인터넷을 통해서 그림에 대한 사전 지식을 쌓고 간다. 알아야 보인다.
  • 그림에 대해 사전지식과 별개로, 자기만의 느낌으로 즐긴다.
  • 도슨트 설명을 들으면 좋은데, 사람을 몰고 다녀서 정작 그림은 제대로 볼 수가 없다. 그림을 볼 시간이 20~30분 정도 추가로 필요하다. (개인적으로는 도슨트 설명을 듣지 않고 피해다닌다. ^^)
  • 조명에 따라 보이는 느낌이 다르다. 또 조명때문에 잘 안보이는 부분도 있다. 정면에서만 보지 말고, 좌우 옮겨가며 시선을 달리해본다.
  • 가까이 볼 때와 뒤로 물러 볼 때 느낌이 다르다. 뒤에서도 보는 여유를 즐긴다.

이번 전시회는 9.29(목)까지 연장된다. 시간도 직장인들을 위해 9시까지.
Posted by 좋은진호
일상2007. 8. 1. 23:51
며칠전의 일이다. 워낙 더웠던 날씨라 '찜통 더위', '가마솥 더위'의 표현은 언제부터, 누가 시작했는지 궁금해졌다. 일단 포털에서 '찜통 더위'를 검색해봤다. 결론적으로 보면 옛날(?)부터 써왔다는 거. 흘러흘러 내려온 것으로 보편적으로 쓰는 표현이다.

검색중에 '김동완 전 기상 캐스터'의 인터뷰 기사 를 보게됐다. 김동완 전 기상 캐스터는 '찜통 더위', '가마솥 더위'라는 말을 하면 사람들이 걱정부터 하니깐, '오늘은 파리가 조는 듯한 날씨'라는 표현을 썼다고 한다. '내일은 찜통 더위가 될 것입니다.'라고 말했다면 맘은 이미 찜통 속에 들어간 상태였지 않을까... 저런 재치가 기분만큼은 즐겁게 만든다.

하나의 궁금증이 더 생겼다. 그렇다면 파리는 졸까? 또 검색을 시작했다. ^^

사용자 삽입 이미지
[ 이미지 출저 : 구글 검색, http://www.junnodae.org/FreeBoard2/Read_Proc.asp?BoardNo=5&PKID=269 ]

http://ks.hmall.com/pf/top/qa_detail?eid=068t9
파리는 잠을 전혀 자지 않는 동물이다. 자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체온이 떨어져서 단순히 불활동 상태(dormancy)에 들어간 것이다.
잠을 자지 않는 동물은 없을까? 어항 속에서 가끔씩 꼼짝하지 않고 있는 금붕어들은 잠을 자는 것 일까? 그렇다면 파리도 잠을 잘까? 짚신벌레, 게, 가재, 오징어, 문어, 파리, 나비 등의 동물들은 움직임이 있는 활동기와 움직임이 없는 휴식기를 번갈아 나타낸다. 그렇지만 그런 휴식기를 곧 수면이라고 하기는 힘들다.
왜냐하면 수면이라고 단정짓기 위해서는 움직임이 없는 상태뿐 아니라 감각자극에 대한 민감성이 떨어지고 체온이 유지되는 데다가, 특히 특정한 모양의 뇌파가 나타나는 것 등의 기준을 충족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 파리는 잠을 자지 않는다. 따라서 파리는 졸지 않는다.

7월 27일의 나의 궁금증은 이렇게 막을 내렸다. ^^

※ 이글을 쓸 당시에 검색 결과를 토대로 작성한 것이라서 잘 못된 지식일 수 있습니다. 참고만 하세요.
Posted by 좋은진호